동물 방역의 표준을 만들다

경기일보 집중취재반 이호준, 채태병, 김은진 기자

경기 농가 울면, 충청 업체 웃는다

최근 3년간 경기지역에서 조류인플루엔자(AI)와 아프라키돼지열병(ASF) 등 가축전염병 발생으로 수많은 살처분 작업이 이뤄졌다. 그런데 이 작업 10건 중 9건 이상이 충청도 업체가 수주했다.

경기도 살처분 업체들은 '경기도 농가가 울면, 충청도가 웃는다'라는 자조 섞인 한숨만 내쉬는 실정이다.

"살처분 작업은 언제 생길지 모르니 평소 시·군과 관계를 잘 맺어놔야 하는데 홍보를 위해 방문해도 잘 만나주지 않아요."

 살처분 작업 뿐만이 아니다. '가축매몰지 복원 사업' 역시 충청지역 업체가 대부분 수주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가축매몰지 복원 사업은 과거 조류인플루엔자(AI)나 구제역 등의 발생으로 살처분해 땅에 묻은 가축 사체를 파낸 뒤 오염된 토양을 복구하는 것인데, 통상 조성 후 3년이 지난 가축매몰지를 대상으로 한다. 현재 가축매몰지 복원 사업은 조달청 나라장터 종합쇼핑몰의 다수공급자계약(MASㆍMultiple Award Schedule) 시스템을 통해 계약이 진행된다. MAS 시스템상 1억원 미만 사업은 수의계약으로 이뤄지고, 1억원 이상 사업은 발주처가 3개 이상 업체를 지명해 경쟁시키는 방식으로 추진된다. 

매몰지 복원도 충청 독식 '남 배불리는 일' 언제까지

조달청 조달정보개방포털을 통해 도내 가축매몰지 복원 사업 수주 현황을 확인한 결과 지난해 총 43건(59억6천250만원)의 사업이 발주된 것으로 확인됐고, 이 중 80%가량인 33건(46억4천868만원)을 충청지역 업체가 수주했다. 또 전체 43건 중 25건(16억1천424만원)은 1억 원 미만 사업이어서 수의계약으로 진행됐는데, 19건(12억3천111만원)을 충청지역 업체들이 수주했다. 지난해 도내 가축매몰지 복원 사업의 절반가량을 충청지역 업체가 아무 경쟁 없이 수의계약으로 수주한 것이다.

살처분 작업에 이어 가축매몰지 복원 사업마저 충청지역 업체가 압도적인 수주율을 보이는 것은 2019년 도입된 다수공급자계약(MASㆍMultiple Award Schedule) 제도 때문이라고 경기지역 업체들은 입을 모은다. 결국 해결책은 MAS 제도 개선 뿐이라는 것이다.

도내 업체들 "공정 경쟁 위해 MAS 제도 개선해야"

MAS 도입 전에는 가축매몰지 복원 사업은 참여희망 업체의 신청을 받아 적격심사를 진행해 가장 높은 점수를 받은 업체를 선정했다. 하지만 MAS 제도 도입 이후 공정 경쟁은 사라지고 수의계약 범위는 1억원까지 넓어졌다. 매몰지 1곳당 복원비용이 최대 5천만원 수준인 것을 감안하면 각 시·군 입맛에 맞는 업체에 사업을 몰아줄 수 있게 됐다. 지명 경쟁도 시·군이 임의로 선택할 수 있는 구조다. 또 MAS는 기업신용평가 AAA등급 업체와 법정관리를 받는 CCC등급 업체 간 점수차이가 0.03점밖에 나지 않아 부실 업체에 대한 변별력이 부족하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명절선물에 리베이트까지…공무원-업체 ‘검은 의혹’

"명절과 생일에 선물은 기본"

살처분업계에서 일하는 A씨는 이 바닥에서 많은 일감을 따내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은 공무원을 대상으로 한 영업이라고 전했다. A씨는 “집을 한 채 사줬다는 소문도 있다. 현재 경기도내 3개 시의 방역팀장 성씨가 B씨인데, 이들이 접대를 자주 받아 업계에서는 이들을 통칭해 ‘삼B’라고 부른다”며 “물론 소문이란 게 과장되기 마련이지만 향응 접대가 없을 수가 없는 구조”라고 못 박았다.

"그런 업체 없는데...아, 있네요"

충청지역 업체가 경기지역 일감을 수월하게 따내기 위해 페이퍼 컴퍼니를 설립하는 사례가 있다는 제보를 받고 찾은 안성시 서운면. 살처분 관련 업체로 등록돼 있는 주소를 찾아가니 장작을 판매하는 업체였다. 이곳에서 만난 C씨에게 살처분 업체의 존재 유무를 묻자 그런 업체는 모른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발길을 돌리려는 찰나 C씨는 뒤늦게 무언가 생각난 듯 자신의 동생이 이곳에 개인사업자 등록을 해놨다고 말했다. C씨는 “동생이 사업자 등록을 위한 곳이 필요하다고 해서 장소를 빌려줬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 업계 관계자는 “그곳이 페이퍼 컴퍼니라는 걸 공무원들도 알고 있다”며 “한 업체 명의로 사업을 다 따내면 모양새가 안 좋으니까 다른 회사 이름으로 수의계약을 진행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1억 미만 사업 만들기도"

업계 관계자 D씨는 공무원이 자신과 친한 업체에 수의계약으로 일감을 몰아주고자 의도적으로 1억원 미만 사업을 만들어 발주한다고 귀띔했다. 1억원 이상 큰 규모의 매몰지는 분리 발주하고, 사업비 규모가 작은 매몰지는 여러 개를 묶어 1억원 미만 사업으로 발주한다는 것. D씨는 “조달청 조달정보개방포털을 보면 사업비를 9천만원 내외로 정해 수의계약을 준 사례가 수두룩하다”며 “이미 업계에선 어느 시 매몰지는 ㄱ업체, 어느 시 매몰지는 ㄴ업체가 전담해 처리한다는 것이 룰처럼 통용돼 있다”고 전했다.

'유착 의혹' 적발…31개 시·군 실태조사 나서야

지난해 7월 경기도는 평택시를 대상으로 종합감사를 추진했다. 당시 감사에서 도는 지난 2014년 7월부터 2019년 7월까지 평택시 축산과 동물방역팀장으로 근무한 A씨가 2017~2018년 가축매몰지 복원 사업 용역 6건을 의도적으로 수의계약 체결한 정황을 포착했다. A팀장은 평택시 회계과에서 통합 발주 및 경쟁입찰을 검토하라고 요청했음에도 수의계약 진행을 위해 담당자에게 경쟁입찰의 문제점을 문서로 작성해 회계과로 회신하라고 지시했다. 도는 이 같은 A팀장의 분리 발주 지시가 불특정 다수의 관련 업체의 사업 참여 기회를 박탈함으로써 용역계약의 공정성과 투명성을 훼손했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A팀장은 보직이 한정된 농업직 공무원이라는 이유로 경징계 조치를 받는 데 그쳤다. 이처럼 공직사회와 일부 업체 간 유착 관계가 수면 위로 드러났음에도 솜방망이 처벌이 내려지면서 도내 전 시ㆍ군 대상 진상조사가 시급하다는 의견이 제기된다.

경기일보 보도 후...

이재명 지사, 칼 뺐다

불공정 관행 근절 위한 종합대책 발표

본보 집중취재반의 보도 후 경기도가 일주일만에 대책을 내놨다. 이번 대책에는 공정한 업체 선정은 물론 동물보호 강화 조치, 공무원과 업체 간 유착 여부 조사까지 모두 포함됐다.

특히 경기도는 이번 종합대책을 농림축산부와도 협의ㆍ추진할 계획이어서 경기도의 개선방안이 ‘전국적 표준모델’이 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감을 모으고 있다.

경기지역 살처분 업계 관계자

“그동안 경기지역 일감은 공무원들과 끈끈한 관계를 형성해놓은 타지역 업체가 수의계약을 통해 독점 수준으로 수주했는데, 지역제한 입찰 도입으로 도내 업체들도 경쟁에 참여할 수 있는 발판이 마련된 것 같다. 표준원가 기준 마련도 공정 경쟁 환경을 조성하고, 불필요한 세금이 낭비되지 않도록 하는 중요한 요소가 될 것이다."

최영길 대한한돈협회 경기도협의회장

"살처분 작업의 신속성이 훼손되지 않는 선에서 공정하게 가장 적합한 업체를 선정할 방법이 도입된 것 같다. 이번에 도가 마련한 개선방안은 꼭 필요했던 제도다. 개선방안이 안정적으로 정착돼 피해를 보는 업체가 사라지길 바란다."

환경운동연합 관계자

"시간이 촉박하다는 이유로 살처분 현장에서 암묵적으로 행해지던 SOP(긴급행동지침) 위반 사례를 근절하기 위한 관리감독 강화방안이 포함된 것은 긍정적인 부분이다. 하지만 개선방안을 발표했다고 해서 공직사회와 일부 업체 간 유착 의혹 등에 대한 진상 규명이 흐지부지되면 안 된다. 도의 조사가 ‘공무원 식구 감싸기’로 끝나선 안 된다."

경기일보의 집중취재 그 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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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살처분 →안락사’ 축산용어 바꾼다

도는 본보 집중취재반의 연속보도를 통해 안성시의 한 살처분 현장에서 살아있는 닭이 파쇄기 안으로 넣어졌다는 의혹이 제기되자, 지난달 안성경찰서에 해당 현장을 담당했던 용역업체를 동물학대 혐의로 고발했다. 이 과정에서 도는 법적으로 살처분이라는 용어를 계속 사용할 경우 이와 비슷한 사례가 지속적으로 발생할 것으로 예상, 이를 예방하고자 살처분을 안락사 처분이란 용어로 변경키로 했다.

동물보호 용어순화 ‘첫발’

이를 위해 도는 2021년도 상반기 동물복지위원회에서 살처분 등 용어를 순화하는 방안에 대해 전문가 자문을 구했다. 또 도축장을 ‘생축작업장’ 또는 ‘식육처리센터’, 도축검사팀을 ‘대동물검사팀’, 도계검사팀을 ‘소동물검사팀’ 등으로 변경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아울러 동물보호법에 표현돼 있는 분양은 ‘입양’, 소유자는 ‘보호자’, 도살은 ‘죽임’, 사육은 ‘양육’ 등으로 용어순화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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